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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
분당서울대학교병원
10월 25일

퇴사 후 반추해 보는 기억에 남는 환자들: 보람편🕯

안녕하세요! 크리에이터 샤이입니다🩷

오늘은 지난 글이었던 “퇴사 후 반추해 보는 기억에 남는 환자들: 분노편🔥”에 이어 보람편🕯으로 돌아왔어요!

이 사연은 제가 큰 보람으로 느끼고 서울대학교병원 지원 당시 자기소개서에서 살짝 각색해 활용하기도 했는데요 ୧⃛(๑⃙⃘◡̈๑⃙⃘)୨⃛

이 분은 의료진과의 대화는 물론 모든 치료를 전면 거부하신 대장암 환자분이셨습니다.
보호자가 상주해야 하는 일반 병동이었음에도 보호자의 개인 사정으로 보호자가 상주하지 않아 간호사가 밀착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간호사가 지도해도 의사가 찾아와도 경구약도 거부하고 채혈도 거부하고... 심지어 라인을 잡는 것조차 거부해 iv전담팀 선생님께서 진땀을 빼신 적도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데이 출근을 해서 6am 랩 결과를 까 보니 포타슘 수치가 2.6까지 떨어져 있었어요. 정상 수치는 3.5~4.5인데, 이 정도의 수치는 즉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판단해 제 업무 시작 시간이 되기도 전이었지만 즉시 주치의 선생님께 노티를 드렸어요.

TPN에 mix할 KCl 처방과 경구약 K-contin 2T 처방이 즉시 추가로 났는데, KCl은 환자분께 조용히 다가가서 달고 있는 TPN에 자연스럽게 섞고 믹스 용량과 주입 속도를 확인해서 고위험 약물 스티커를 붙이기만 하면 되지만 경구약은 환자분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환자분께서 “약 먹을게, 줘요.” 하고 받아가시고는 약을 자꾸 숨겨두고 안 드시더라구요. 약 드셨는지 확인하려고 쓰레기통을 뒤져도 약 먹고 버린 비닐 쓰레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잘 살펴보니 베드사이드에 꿍쳐 두셨던 거죠 .. 그렇다고 의식이 있는 분을 억지로 먹이기도 어렵고🥲

그런데 갑자기 너무 속이 상하는 거예요.
지금 혈중 포타슘 수치가 어떤 의미인지 아실까? 이 상태로 계속 치료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아실까? 약물 치료만 잘 받으셔도 지금 컨디션 자체가 난조인 건 아니라서 금방 나아지실 텐데.
연세도 우리 아버지랑 비슷하셔서 더 신경쓰였어요. 그리고 우리 아빠가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환자분의 꺼슬한 손을 맞잡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 드렸죠. 근무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지만 이 환자분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혈액 검사 수치가 어떤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치료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협박조로 들리지 않도록, 하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함께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이 전해지도록 열심히 설득했던 것 같아요.

그 간절함이 전해졌는지, 환자분께서 보호자 없이 혼자 있으니 우울감이 커져서 그랬다, 아내를 보호자로 불러서 같이 있을 테니 아내가 오면 약도 먹고 치료도 받겠다 하셨어요.
너무 감사한 마음에 바로 아내분께 연락을 드렸고 아내분께서도 개인적인 일들을 다 던져 두고 달려오셨더라구요.

다행히 환자분께서는 약을 드셨고, 랩 recheck 후 포타슘이 3.4까지 돌아온 걸 확인했어요.

놀라운 건 그 이후로 바늘이 아프다며 랩 하는 것도 짜증스럽게 거부하시던 분이 군말 없이 팔을 내어주기 시작하셨다는 것이었어요.

더불어 항암 치료도 적극적으로 받으셔서 훨씬 나은 컨디션으로 무사히 퇴원하셨답니다.

이 경험은 저에게 진심이 전해지면 어떤 보람으로 돌아오는지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더라도, 내 업무의 딜레이가 있더라도 내 환자는 내 책임이고, 병원에서의 경험이 나쁜 기억이 되어서는 안 되며,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구요.

물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짜증이나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내가 맡은 환자라면 부드럽게 설득하고 건강 회복으로 잘 이끌 수 있도록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앞으로 어떤 병원, 어떤 부서에서도, 더 나아가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책임에 진심을 다함으로써 보람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이쯤에서 긴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호흡이 긴 글이었는데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입사 준비 체크리스트: 서울대학교병원 소화기센터 내시경실”로 돌아오도록 할게요!

모든 분들께서 근무 중 작은 보람이라도 느껴 보실 수 있는 날들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